🇦🇺 D+2 인스펙션 그리고 초면의 토모미


눈 떠보니 남의 집이네. 맞다 나 멜버른 왔지. 입국한 나 미덕에 알게 된 토모미랑 오늘 만나기로 했는데 멜버른 오기 전 벌써 인스펙션 일정을 잡은 토모미에 자극받아 플랫 메이트에 여기저기 메시지를 흩뿌려 나도 오늘 인스펙션을 두 개나 받아냈다. 토모미는 나미의 룸메 마키의 친구인데 나랑 같은 날 멜버른에 입국한다 해서 갑부인 스타 맞팔하게 됐는데.. 미안 토모미.. 네가 싫은 게 아니라 그냥 내가 디엠을 잘 안 보는 것뿐이야.. ★

인스펙션 두 개 중 하나는 온라인으로 인스펙션하잔다. 이게 뭔 개소린가 싶긴 하지만 일단 영어로 대화하는 연습도 해야 하니 일단 알겠다고 했다. 영상통화로 인스펙션하는데 뭐 면접 보듯 혼자 살아본 적 있냐 요리 좋아하냐 뭐 이것저것 묻는데 이게 뭐 하는가 싶었지만 일단 대답은 다 해줌. 그리고 방을 보여주는데 나름 괜찮았다. 근데 빌이 포함되지 않은 게 좀 걸려서 일단 보류.
근데 이 아줌마가 좀 내로남불이다. 친구들을 초대하는 건 싫지만 본인은 토요일, 일요일 교회 사람들이 와서 거실에서 찬송도 부르고 수다도 떨 거란다. 그럼 내주마 휴식은 어쩔 거야. 저 얘기 하는데 좀 정 뚝 떨어이라 일단 알겠다 하고 계약할 거면 내일까지 연락 주겠다 했다. 물론 연락 안 함. 같이 살던 룸메 욕도 나한테 하던데 과연 룸메만 문제일까 싶었다. 뭐 내 알 바 아니지만.
쨌든 토모미가 본인 화요일에 인스펙션끝나고 쇼핑할 건데 같이 갈래? 해서 바로 그러자 함. 역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인가 봄. 토모미 인스펙션은 아침이고 내 인스펙션은 1시라 일단 끝나고 연락한다 하고 인스펙션을 왔는데.. 왜 가도 가도 끝이 없는데. 구글맵에서 멀어지는 CBD.. 아 뭐 쨌든 내가 살던 동네도 서울 아니었지만 살기 좋았잖아. 그리고 나름 한적해서 내가 생각하는 호주의 한적함이구나 위안 삼아보며 나쁘지 않다 생각하고 있는데 트램 밖 풍경이 점점 나쁘게 변해가고 있었음. 뭔가 나쁘다 이거. 내 직감이 말해줌.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도망갈 순 없으니 일단 가본다, 인스펙션.
내려서 구글맵 따라가는데 차이 나 타운 같은 분위기가 났다. 시내 중심의 차이 나 타운이 아니라 좀 더 날것의 차이나타운이라 말하면 느낌이 오려나. 쨌든 좀 뒷골목 느낌이었음. 근데 더 문제는 진짜 골목으로 들어감. 근데 왜 여기 DANGER 적혀있냐. 내 직감 맞은 거니. 지금이야 낮이라 걸어 다닐 수 있지만 밤엔 진짜 길 가다 머리 터져도 모를 듯. 머리 내놓고 다니는 꼴이지 뭐. 가기 싫은걸 여기까지 온 트램 값이 아까워 꾸역꾸역 갔다. 거의 도착하니 연락한 당사자와 룸메 두명이 마당에 나와 수다 떨고 있는데 착한데 무서운 인상 알라니. 물론 사람을 겉모습으로 판단하면 안 되겠지만 정말, 착한데 무서운 인상이었음.








방 구경만 하고 나가야지.. 하는데 방다 구경시켜주더니 그 룸메 둘 과 당사자가 뒤쪽 마당에 앉아 같이 수다 떨길 원하는 듯 이것저것 묻는 게 아닌가. 아 나 빨리 가고 싶은데. 물론 친절한 사람이긴 하다만 이 집은 내 집이 아냐.. 그렇게 몇 마디 왔다 갔다 하고 난 거길 빨리 떴다. 좋은 세입자 만나시길 바랄게요.. ★

토모미에게 인스펙션 끝났다 말하고 시티로 가기 위해 트램을 기다리고 있는데, 아니 이거 어디서 타는 거야. 자연친화적 아니고 차량 친화적 도로임. 그냥 도로에 서서 트램 타야 함. 쨌든 트램 타서 나미랑 전화하는데 얘가 사둔 파에 곰팡이 폈단다. 그래서 파 보관법 알려주고 전화 끊음. 쉽지 않네 호주에서의 삶.



그렇게 겨우겨우 만난 토모미. 스타벅스에 앉아 기다리는데 뭔가 저 사람일 것 같다는 생각에 살짝 눈짓했더니 이쪽 보고 인사를 하는 거 보니 토모미 맞나 보네. 초면의 토모미와 짧은 영어로 이리저리 얘기를 하고선 우린 토모미의 겨울옷을 사러 갔다. 유니클로가 익숙한 토모미를 따라 유니클로를 갔는데 살짝 둘러보고선 가격을 보고 놀라는 토모미. 그래 토모미, 여긴 일본이 아냐.. 여긴 호주야.. 자라랑 흐앤므, 그리고 보이는 곳은 모두 들어가 봤지만 토모미 맘에 드는 무난하고 저렴한 아우터는 없었다. 그렇게 다섯시에 토모미는 다음 주부터 일할 곳을 잠깐 들리기 위해 갔고, 나는 내 아우터를 사기 위해 시티를 좀 더 돌아다녔다.


흐앤므 옷이 맘에 들었지만 호주 패치된 사악한 가격을 보고선 다시 내려놨다. 아이쇼핑만 오지게 해서 눈빠질 것 같음. 그렇게 아우터는 포기하고 숙소로 돌아가는데 가는 길에 말로만 듣던 K 마트가 눈에 보였다. 의식의 흐름대로 들어가 보니 뭐 이마트처럼 옷도 팔고 리빙 제품들도 많이 팔더라. 난 또 마트라 그래서 그냥 먹을 것만 있는 줄 알았지.
이게 호주 효과인가. 호주 물가 한껏 담은 가격들 보다가 여기 거 가격 보니까 진짜 저렴하네. 물론 한국에선 이돈주고 이걸 살까 싶은 것도 호주 패치만 되면 괜찮아 보인다. 호주망붕렌즈끼고 결국 털북숭이 검은색 아우터 35달러에 겟 함. 지금까지 잘 입고 다니니 그래도 잘 산 듯.

숙소 돌아와서 벌써 저물어버린 둘째 날 사진들을 둘러보다가 더 이상 게을러지면 못 씻고 그냥 잠들겠다 싶어 캐리어를 열어 옷들을 꺼내기로 했다. 근데 왜 비밀번호가 안 맞는데. 아니 이거 맞는데 왜 안되는 거야. 지친 몸에 짜증이 좀 났지만 짜증만 낸다고 해결되는 건 없다는 걸 알고 있지. 일단 네이버에 캐리어 비밀번호 찾는 법 검색해서 진짜 겨우겨우 풀어냈다. 쉬는 것도 쉽지 않구나. 이렇게 멜버른에서의 둘째 날도 지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