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셀 쪽에 살면서 시위하는 걸 한번 본 적 있다만 그것 때문에 피해 받는 일은 없어서 그냥 열정이 넘치는구나 했지. 오늘 출근하려고 정류장으로 가고 있는데 67번 트램이 서있는 거임. 뛰어가면 탈 수 있겠지만 흔한 게 트램이고 어차피 지금 저거 타도 너무 빨리 도착할 것 같아 다음 트램을 타고 가려 했음. 근데 67번이 좀 뜸 들이면서 문을 안 닫더라. 그때 알아봤어야 하는데. 그 안에 있던 할머니랑 눈 마주쳤는데 그 눈빛이 그 뜻이었는진 몰랐지.


67번 트램이 가고 나서 갑자기 경찰관들이 말 타고 유유히 트램 길을 걸어오더라. 그래서 일단 동영상부터 찍고 있으니 경찰들이 미소 지어줌. 그러다 그 뒤로 무슨 구호 외치면서 사람들이 물밀듯 올라오는데 시위 하나 보더라. 시위하는 건 좋은데 문제는 이것 때문에 트램이 다 멈춤. 나 지금 딱 트램 타야 여유롭게 도착하는데 트램은 계속 안 오고, 또 얘넨 그냥 지나가는 것도 아니고 우리 앞에 멈춰서 구호 외치고 있음.
누군가는 이 광경을 본다면 호주의 민주주의가 살아있다고, 선진국이라고 본받아야 한다 느낄지도 모르겠지만 난 좀 다른 부분을 느꼈음. 그들의 외치는 구호에도, 민주주의를 실천해야 한다는 것에도, 점점 더 나은 사회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에도 동의하나 나는 이 시위에 큰 문제점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음.
물론 때때론 이렇게 급진적인 시위 방법이 필요할 때가 있다는 것을 앎. 하지만 이들의 행위는 이러한 구호를 외치고 추구하고 있는 자신들의 모습에 취한 것인가 싶을 정도로 타인을 배려하지 않았음. 사회가 발전하고 기술이 발전하면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시위함에 있어 그 방법이 다양해졌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임. 그리고 그 방법들 중 사람들에게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영향력 있는 시위를 할 수 있는 방법이 분명히 있을 거임. 근데 이들은 타인의 시간과 기회를 약탈하면서 그것을 자신들의 당연한 권리로 여기고 있었고, 심지어 그 행위에 대해 뿌듯함까지 느끼고 있는듯했음.
내가 쓴 글들에도 많이 나온 말이지만, 우리가 사는 사회는 돈만이 화폐가 아님. 우리의 시간도 하나의 화폐인데 이들은 불특정 다수의 화폐를 자신들의 맘대로 뺏어 사용해버린 꼴이 아닌가 하는 게 내 생각임.
이들이 바라는 정의는 분명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지만, 이들의 시위 방법은 단어 그대로 old-fashioned임. 시대가 바뀌고 세상이 바뀐 만큼 다양한 방법이 있으니 이젠 그 시대에 맞춰 방법을 찾아보는 노력을 해야 하지 않을까.
지금까지 쓴 건 이날 이 시위를 보고 든 생각이고, 이 부분에 대해서는 좀 더 생각을 정리해 제대로 글을 써볼 생각임. 덕분에 좋은 생각거리를 얻었지만, 이사 가는 곳도 러셀 스트리트에서 가까운 곳이라 출근 루트가 같은데 며칠에 한 번씩 하는 시위를 잘 피해서 출근할 수 있을까 걱정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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