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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AUSTRALIA_MELBOURNE 🇦🇺

🇦🇺 D+38 혼돈의 트램처럼

by 이 장르 2023. 9.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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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멜버른에 바람 엄청 붊. 그래도 날씨 좋으니 됐어. 오늘은 하루종일 일하는 날이어서 오전엔 이것저것 하다가 열두시까지 출근함.

확실히 환경이 바뀔 때마다 루틴을 재정비해야 하는 게 쉽지 않음. 한국에서 독립했을 때도 사는 공간만 바뀌었을 뿐인데 하루 루틴을 아예 싹 갈아엎고 거기에 적응하는 데 좀 걸렸는데 여긴 사는 공간뿐만 아니라 생활까지 확 바뀌니까 여태까지 했던 루틴들이 싹 다 무너짐.

한국에서 하루에 한 시간씩 유튜브 보고 운동했다면 여긴 카펫 바닥이라 필라테스 하기도 좀 그래서 스쾃으로 대체하고 있음. 그리고 영상편집하는 루틴도 스케줄 근무를 하다 보니 일정 뒤죽박죽 + 쉬는 날엔 그날 하루하루마다 나가서 새로운 것들을 보고 느껴야 된다는 압박감의 환장 콜라보 때문에 기존 루틴을 쓰기 어렵게 됐음..

물론 여기 온걸 후회한다는 말은 아니다. 이곳의 생활이 너무 좋아서 이곳에 있는 기간 동안 여기서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은 모두 하고 가고 싶다는 욕심이 커져 그런 거겠지. 오기 전부터 한 달 반 정도는 심적으로 많이 힘들 수 있다는 각오를 하고 온 터라 뜻밖의 감정들을 마주할 때마다 그러려니 무디게 반응할 수 있었다. 한 달이 살짝 넘은 지금, 예상보다 감정적인 부분이 많이 정리된 것을 봐선 내가 이곳에 꽤 적응을 잘하고 있구나 싶었다. 스스로가 기특하면서 아 난 어딜 가도 살 수 있겠구나 싶었다.

사람들은 그렇게 힘들면 주변에 주절주절 얘기라도 해보라 하는데 나라는 사람은 힘들다 해서 그걸 말로 내뱉는 게 쉽지 않은 편이다. 우리 모두 각자의 고통을 짊어지고 가고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거기다 굳이 내 고통을 얹어주고 싶지 않다. 그리고 이 고통은 오롯이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기에 말하는 행위 자체가 나에게 가져다주는 건 결국 아무것도 없더라.

트램 잘못탐 ​
 

오랜만에 퇴근하면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 걸면서 탄 트램은 우리 집으로 가는 트램이 아니었고 나는 인적 드문 정류장에 덩그러니 놓였다. 이제는 그 어느 곳에 놓여도 무섭지 않지만 덩그러니 놓였던 그 첫 순간을 여전히 잊지 못한다. 후회보단 배울 점을 찾으려던 내 삶의 태도조차 삐긋거리던 그 시간들을 잊지 못한다. 물론 그렇다 해서 이곳을 포기할 생각은 없었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지금은 확실히 잘 지내고 있다. 호기롭게 0부터 시작해 보겠노라던 나의 외침은 메아리가 되어 돌아왔고, 고요히 고독의 시간을 견뎌내야만 했던 이들의 삶이 조금 더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당신들은 어떻게 이 감정들을 견뎌내온 걸까.

워홀의 연타가 오기엔 너무나 이른 나날들이고, 그리고 이게 현자라고 하기엔 아직도 나에게 이곳은 매일이 새롭다. 어쩌면 더 많은 걸 가져가야 한다던 나의 욕심 때문일지도 모르고.

 

오늘도 아름다운 멜버른 퇴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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